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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문명의 기원 그리스 미술의 여러 양식

by 퀸소담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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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리스 문명의 시작

그리스 문명의 출발은 미케네 인들이 멸망한 후에 시작되었지만 그다지 영광스럽지 못했다. 기원전 1000년 무력에 여러 가지 그리스어 방언을 쓰는 사람들이 에게 해 주변에 살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 주된 민족은 주로 그리스 본토에 살았던 도리아인과 주변의 많은 섬들 및 소아시아 서해안 지역에 살았던 이오니아인이었다. 그들은 넓게 흩어져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는데, 이들 공동테가 모여 도시국가인 폴리스로 발전하였다. 최초의 공동체들은 가난하였고 미개했으나, 점차 강성해진 폴리스들은 이웃 국가들과 폭넓은 교역을 시작하였으며 이집트와 근동의 민족 및 문화에 접촉하게 되었다. 풍부하고 완성된 예술형식을 갖춘, 유서 깊고 개화된 뛰어난 이들의 문명에 깊은 감명을 받아 필사적으로 배움을 갈구하였어 그 끝에 글 쓰는 법과 돌 깎는 법 등을 배우게 되면서 후일 그들을 유명하세 만든 문학과 조각의 창조 중력을 갖추게 되었다. 각각의 폴리스는 아주 독립적이었으며 그들 나름의 개성이 있었는데 독립된 폴리스들은 공통된 언어와 종교로 얽혀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델피와 올림피아 같은 범그리스 성소에서 서로 만나 신들을 기리는 체육, 시, 음악 경연 등을 펼쳤다. 폴리스들 중 특히 아테네는 페르시아 전쟁 이전에도 개회되었지만 전쟁이 종결된 후에는 그 문화가 전성기에 달했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난 뒤인 기원전 479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작인 기원전 431년까지의 50여 년 동안 아테네에서 미술, 정치, 시, 연극, 철학, 법학, 논리학, 역사 수학 등 다방면에서 창조력이 넘쳐났던 최고의 황금시 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에 패배했지만 그동안 그들이 창조한 작품들은 뛰어남 아름다움으로 인해 고정되었다. 그리스 철학은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의 격언에 그대로 집약되어 있었다. 이것은 이성적인 회의와 현상유지에 도전을 강조했던 다른 철학자들의 사상과 결합되어 지적이고 예술적이며 창조력이 넘치는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기에 충분했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가 그리스 철학의 중심 개념인 것처럼, 그리스 예술의 주요 주제는 인체조각이었다. 그리스 철학이 사고의 명석함과 조화질서를 강조했듯 그리스 미술과 건축 역시 균형을 강조하였다.

2. 그리스 미술의 여러 양식

-기하하적 미술(GEOMETRIC ART 기원전 9~8세기) : 동물과 인간을 단순화한 프리즈와 기하하적 테두리 문양으로 장식한 도자기

-아르카익 미술(ARCHAIC ART 기원전 600~480년) : 도가화와 코우로스라 불리는 석조 조각, 예를 들어 코우로스 코레를 살펴보면 정면 입상, 왼쪽 발을 앞으로 내밀고 주먹을 쥐고 미소를 띠고 있는데 이것을 '아르카익 미소'라고 부른다. 또한 초기단계에 고전 조각은 엄숙하고 절제된 표현이 특징이다.

-고전주의 미술(CLASSICAL ART 기원전 480~323년) : 그리스 미술과 건축의 전성기로서 형식과 조화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헬레니즘 미술(HELLENISTIC ART 기원전 323~331년) : 소아시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같은 그리스 식민지에서 나 온양식으로 기원전 50년에 제작된 <라오콘 상>에서 보이는 것 같이 고전주의 양식보다 좀 더 연극적으로 나타난다.

3. 그리스 회화와 도기화

그리스인들은 매우 뛰어난 화가였다. 그들은 벽화를 그렸고 목재 패널에도 그림을 그렸다. 문헌에 의하면 그리스 화가들은 사실적인 착시 기법, 트롱프뢰유(trompe l'oeil)에 정통했다고 한다. 그들이 그린 그림은 너무나 실물 같아서 새들이 벽화 송의 과일을 쩌아 먹으려 했다는 기록도 있다. 불행히도 오늘날 남아있는 작품은 없지만 그리스 회화의 사실적인 세부 묘사는 생활 도자기에 그려진 인물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도기에는 보통 그리스 신화 속의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와 전쟁이나 장치와 같은 현세적인 주제들이 주로 그려져 있다. 기원전 800년경의 가장 초기 도기화 디자인은 인물과 장식 무늬의 기하학적 형태 때문에 '기하학 양식'이라 부른다. 그 후의 아르카익 시기는 도기화의 전성기였다. 그리스인들은 포도주를 물로 희석해서 마셨는데 주둥이가 넓어 두 액체를 담을 수 있는 혼합용 사발(크라테르 3)과 그것을 우아한 겁에 따르는 주전자가 필요했다. 백포도주나 올리브기름, 혹은 말린 것을 담아두는 큰 단지도 필요했는데 암포라, 하이드리아를 사용했다. 레키토스는 죽은 이어에 바치는 올리브기름을 담던 도기이다. 고대 항아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18세기에 이 모든 종류의 그릇들을 '꽃병'이라고 불렀다. 실생황에 쓰기 위해 만들어진 도기들이 꽃병으로 사용된 적 없지만 이 명칭은 관례적으로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다.